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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8월 20일] 1786년, 프랑스 재무총감 깔론, 재정 파탄을 보고하다. 프랑스 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오늘의 역사/8월 2010.08.20 00:00
1786년 8월 20일, 재정총감 샤를르 알렉상드르 깔론(Charles Alexandre de Calonne)은 루이16세에게 재정 파탄 상황을 보고한다. 깔론은 1786년의 세입을 4억 7천 5백만 리브르, 지출을 5억 8천 7백만 리브로로 계산했다. 그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깔론은 국가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왕에게 건의했다. 재정파탄에 대한 보고와 건의가 3년 뒤 프랑스와 전 유럽을 뒤흔들게 될 프랑스 혁명의 시작이었다.

강력한 중상주의 정책 덕분에 18세기 프랑스 경제는 호경기였다. 그러나 1775년 이후 프랑스 경제는 불황에 직면했는데, 이 시기에 프랑스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1778년 미국 독립전쟁 참전과 1786년 영국-프랑스 상호 통상 조약이었다. 미국 독립전쟁에 미국을 도운 댓가로 프랑스가 얻은 이익은 단지 영국을 골탕먹였다는 것 뿐이었다. 7년 전쟁의 일부인 프랑스-인디언 전쟁 중에 뺐긴 퀘벡을 되찾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쓴 돈은 20억 리브르에 달했다. 순전히 영국에게 7년전쟁에서 당한 복수를 하겠다는 유치한 복수심이었다[각주:1]. 1786년 통상 조약은 영국 공산품을 수입하면서 프랑스 수공업계는 타격을 입은 반면, 프랑스 곡물을 수출하면서 되려 프랑스 국내 곡물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을 빚었다. 이 2가지 실수로 프랑스 재정은 위기를 맞고 있었다.

여기에 문제를 심화시킨 것은 루이 14세 이래 일상화된 왕실의 사치와 자끄 네케르(Jacques Necker)의 허위 보고였다. 루이 14세가 루이 15세 및 루이16세에게 남긴 것은 빚과 사치였다. 절대 군주 국가의 재정은 왕실 재정과 국가 재정을 따로 분리하지 않았고, 왕실 재정은 텅 빈 상태였다. 루이16세가 즉위한 1774년 국가 빚은 15억 리브르였으나 1789년에는 45억 리브르에 달했다. 하지만 왕실은 그 기간 동안 전혀 사치를 줄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재정총감을 맡았던 네케르는 국가 재정이 파탄 상태임을 계속 숨기고 흑자를 보고 있다며 거짓 보고를 일삼았다. 오늘날 기업에서 분식 회계 수법으로 재무 상태를 속이는 것처럼 네케르도 재정보고서에서 매년 5천만 리브르의 적자가 나고 있는 것을 1천만 리브르의 흑자를 내는 것으로 속였다. 빚을 계속 차입하고 있던 네케르는 국가 채무가 파탄 상태임을 숨겨서 빚을 계속 차입하려 했던 것이다.[각주:2].

네케르의 거짓말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계속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을 하던 양치기 소년이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는데도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고 그냥 무시했다는 동화. 그 동화 꼴이 난 것이다. 네케르의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깔론이 갑자기 "그게 아니고요, 저희 계속 적자였습니다. 그래서 개혁을 하려고 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네케르가 상황을 속이고, 깔론이 열심히 진실을 설명한 대상 모두가 프랑스의 특권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개혁안을 결사 반대할 의사로 충만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 네케르의 거짓말은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네케르의 후임자 깔론이 겪은 일이었다.

솔직해서 추방당한 깔론(Charles Alexandre de Calonne) (출처:위키피디어)

1787년 2월 22일, 깔론은 자신이 구상하고 루이16세가 승인한 개혁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기 위해 명사회(assemblee des notables)를 소집했다. 깔론의 개혁안 중 핵심이라 할 것은 토지세였다. 그가 구상한 토지세는 면세 대상자가 없는 것이었다. 면제 혜택을 누리고 있던 1계급(신부들)과 2계급(귀족) 등 특권층의 반발을 사고도 남을 세제였다. 물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조세를 올리는 것이었지만, 세부담이 과중하다는 여론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깔론은 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국가의 헌법에서 모든 사악한 것을 뜯어고쳐 국가 전체를 새롭게 부활시켜야"[각주:3] 재정 구조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사회에서 동의를 얻고자 했다. 명사회는 국왕이 임명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어서 별 어려움없이 개혁안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깔론에게 최대의 적은 고등법원이었다. 우리 말로는 고등법원이라 보통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 프랑스의 법률은 고등법원에 등록해야 효력을 발휘했다. 깔론은 명사회의 동의를 받으면 고등법원에 법률을 등록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계산했다.

하지만 깔론의 예상은 어긋났다. 명사회는 깔론을 불신했다. 네케르의 거짓보고를 믿었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그거 다 거짓말이었어"라고 하는 깔론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깔론은 열심히 그들을 설득했지만, 명사회는 자신들의 특권을 일부 잃어버리는 대신에 정치 개혁을 요구했다. 그들의 목표는 왕권을 견제할 수 있는 대의제 정부였다.[각주:4] 물론 오늘날의 대의제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깔론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명사회는 한편으로 깔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개혁을 반대할 명분이 없으니 깔론 개인을 공격한 것이다. 깔론도 그리 청렴한 사람은 아니어서 고등법원은 깔론을 심문할 것을 명령했다[각주:5]. 고등법원도 이기심과 조세 증가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대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왕정 공격에 가담했다[각주:6]. 대중들이 면세 특권을 누리던 상류층들에게 과세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깔론은 영국으로 도망쳤다. 루이 16세는 결코 자신의 각료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명사회는 이미 네케르를 추방했다. 네케르는 국가 재정의 진실을 숨겨서 추방당하고, 깔론은 솔직하게 밝힌 죄로 도망쳐야 했다.[각주:7]

다음 타자로 등장한 사람이 뚤루즈의 대주교 로메니 드 브리엔(Etienne Charles de Lomenie de Brienne)이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그가 제시한 개혁안 역시 특권 계층에 과세하는 것이었다. 고등법원과 명사회는 특권층에 대한 과세 부과는 삼부회에서만 승인할 수 있다며 개혁안 동의를 거부했다. 확실하게 왕의 권력을 귀족이 빼앗아올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중세 봉건제도의 부활과 왕권의 제한이었다[각주:8]. 브리엔은 여기서 귀족에 굴복했다. 특권 신분에 대한 과세를 철회하고 대신 4억 2천만 리브르의 차입을 승인받았다. 그러자 1787년 11월 19일, 왕의 사촌 오를레앙 공이 4억 2천만 리브르 차입은 불법이라며 항의하고 나섰다. 루이 16세가 오를레앙공을 추방하고, 오를레앙 공을 지지한 고등법원을 1788년 5월에 무력화하려고 시도하자 귀족들이 국왕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여론은 고등법원을 지지했고, 렌과 그로노블(Grenoble)에서는 폭동이 발생했다. 그르노블의 고등법원은 6월 7일에 브리엔느의 명령이 실행되면, 도피네는 왕에 대한 충성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건 반역이었지만, 군대는 그르노볼 진압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군장교들 모두 특권층인 귀족들이었고, 그들 역시 고등법원 편이었기 때문이다[각주:9]. 이런 분위기 속에서 8월 25일에 브리엔은 해임되고, 네케르가 다시 등용되었다.

결국 루이 16세와 네케르는 귀족들의 압력과 국가 재무 파산 위기의 압박 속에서 1789년 5월 1일에 귀족들의 요구사항인 삼부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귀족들은 삼부회에서 확실하게 왕권을 제한하고 중세 봉건 제도를 부활시키려 했고, 왕은 재무 위기를 해결할 개혁안을 통과시키고 싶어했다. 조세 문제를 둘러싼 두 세력의 알력은 1789년 7월 14일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틀어졌다.

그게 프랑스 혁명이었고, 그 시작이 1786년 8월 20일에 깔론의 재정 상황 보고였던 것이다.

세금은 함부로 가지고 놀 대상이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가 거짓말로 속이다가 된통당한 결과가 프랑스 혁명이다. 특권층이 자신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최소하하고 기득권을 늘리려고 잔머리를 쓰다가 당한 결과이기도 하다. 세금은 그래서 단순히 국가의 수입과 지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참고자료
  •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 로저 프라이스 씀, 김경근/서이자 옮김, 개마고원, (서울, 2001년 3월 15일 발행), ISBN 89-85548-62 X
  •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노명식 씀, 도서출판 가치 (서울, 1990년 9판 참조)
  • 《프랑스인의 역사》, 장 카르팡티에, 프랑소와 르브룅, 엘리자베트 카르팡티에, 장마리 메이외르, 알랭 트라노어 공저, 주명철 옮김, , 소나무 (서울, 1991년),
[키워드] 세금, 프랑스 혁명,
[분야] 프랑스, 정치

[ 같은 날 다른 사건 ]
1953년, 소련 수소폭탄 실험 성공

[ 비슷한 사건 ]


[ 관련 사건 ]
■ 1789년 5월 5일, 삼부회 소집.

  1.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노명식, 38쪽. 한국전쟁에서 당한 복수를 해야 한다는 수구 세력과 얼마나 비슷한가. [본문으로]
  2.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노명식, 39쪽. [본문으로]
  3.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로저 프라이스, 110~111쪽 [본문으로]
  4.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로저 프라이스, 112쪽 [본문으로]
  5.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노명식, 40쪽. [본문으로]
  6.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로저 프라이스, 112쪽 [본문으로]
  7. 깔론은 1802년에 나폴레옹으로부터 귀국 허가를 받아 돌아올 준비를 하다가 영국에서 죽었다 [본문으로]
  8.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노명식, 41쪽. [본문으로]
  9. 《프랑스 혁명에서 빠리 꼼뮨까지 1789-1871》, 노명식, 42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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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broadspeed.com/new_cars/Ford/Galaxy BlogIcon Ford Galaxy 2012.06.14 05:37 신고 Modify/Delete Reply

    나는 최근 블로그를 통해 온 탐구 사랑과 함께 읽고있다. 내가 처음으로 덧글을 남길 거라 생각 했어요. 내가 읽고 즐기고있다는 점을 제외하고 말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블로그가 멋지 네요. 나는 자주이 블로그를 방문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Favicon of http://www.broadspeed.com/new_cars/Ford/S-MAX BlogIcon Ford S Max 2012.06.14 05:37 신고 Modify/Delete Reply

    이 블로그를하기 전에 발견 말았어야 했어. 이 게시물의 조언은 매우 유용하고 확실히 역시이 시리즈의 다른 게시물을 읽을 것이다. 이 사진을 게시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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