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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8월 15일] 1990년, 러시아 록의 전설이며 영웅, 빅토르 초이가 요절하다


오늘의 역사/8월 2010.08.15 00:00
1990년 8월 15일, 라트비아 리가 근처에서 승용차 한 대가 버스와 정면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승용차 운전자가 즉사했다. 운전자는 러시아 록의 선구자이며, 러시아 젊은이들의 우상이자 영웅이었던 록 그룹 키노(КИНО)의 리더 까레이스키 빅토르 초이였다. 빅토르 초이는 러시아 록의 선구자로 여겨지며, 아직까지도 구 소련의 많은 팬들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 매년 그의 기일에 수많은 팬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팬들은 2008년에 사고현장에 동상을 세웠다. 키노의 노래 몇 곡은 한대수, 윤도현 밴드 등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부르기도 했다.


이 날, 빅토르 최는 키노(КИНО) 멤버들과 함께 새 앨범을 녹음하기 위해 레닌그라드로 가던 중이었다. 다른 3명의 멤버 - 리드 기타 유리 카스파랸 (Юрий Каспарян), 베이스 이고리 티호미로프 (Игорь Тихомиров), 드럼의 게오르기 구리야노프(Георгий Гурьянов) - 는 이미 녹음실에서 리더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러나 빅토르 최는 올 수 없었고, 15일 아침 리가 근처에서 사고난채 방치된 그의 차를 발견했다. 차는 산산조각난 상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 앨범을 녹음하기 위한 데모 테이프는 멀쩡했다. 이 데모 테이프는 빅토르 최가 다음 앨범에 쓸 노래를 녹음해둔 테이프였다. 키노는 이 테이프와 다른 멤버들의 녹음을 합쳐서 마지막 앨범 Chyorny albom을 냈다. 사람들은 이 앨범을 "Black album"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고 발생 이틀 후인 8월 17일,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는 다음과 같이 빅토르 최를 평가했다.
빅토르 초이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다른 어떤 정치인들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한번도 거짓말하거나 자신을 팔아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빅토르 초이였고,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그를 믿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모습과 실제 삶의 모습이 다름없는 유일한 락커가 빅토르 초이이다. 그는 그가 노래부른 대로 살았다. 그는 록의 마지막 영웅이다.

그러나, 빅토르 초이의 교통사고에 의문을 던지는 팬들이 있었다. 2010년 지금도 그 논란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의 주장은 빅토르 최(초이)는 단순한 교통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암살당했다는 주장이다. 1990년은 고르바쵸프(Mikhail Gorbachev)가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와 글라스노스트(Glasnost)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때였다. 변화를 촉구하는 록 음악의 영웅이었던 빅토르 최를 페레스트로이카를 반대하는 세력이 교통사고를 가장해 죽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사실로 입증된 적은 없다. 이런 주장은 빅토르 최가 당시 소련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반증해주는 것이다.

빅토르 최의 노래는 묵직했다. 우울하고 희망을 찾을 수 없던 1980년대 소련 사회를 풍자했다. 빅토르 최는 노래를 통해 소련의 젊은이들에게 변화에 앞장 설 것을 촉구했다. 여기에 가사 내용과 어울리는 빅토르 최의 낮고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소련 사회에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을 울렸다. 록의 저항 정신을 레닌그라드에서 제대로 꽃 피운 음악인이 빅토르 최였다.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더니, 자본주의의 첨병 미국에서 시작된 록 음악이 공산주의 소련에서 똑같은 저항 정신으로 두 체제를 풍자하며 퍼졌고, 소련에서 중심은 빅토르 최였다.

빅토르 최 추모 우표

빅토르 최 추모벽







▶참고자료
[키워드] 빅토르 최, 록,
[분야] 소련, 러시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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