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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9월 1일] 1957년, "귀하신 몸" 가짜 이강석 사건의 범인 강성병이 체포되다.


오늘의 역사/9월 2010.09.01 00:00

1957년 9월 1일, 대구의 경상북도 도지사 관사에 유유자적 머물고 있던 한 청년이 경찰에 긴급 체포되었다. 그의 이름은 강성병. 지난 3일 동안 경주, 영천, 안동, 의성, 대구에서 경찰서장과 지역 유지 등을 상대로 "나 이강석이오"라는 말 한 마디로 온갖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확인 작업도 하지 않았다. 대구에서도 도지사 관사에 머무는 대우를 받았는데 뭔가 수상하게 생각한 당시 경북도지사가 진짜 이강석과 고등학교 동기 동창이었던 아들을 불러 확인시키는 바람에 그의 사기 행각이 들통났던 것이다.

이강석은 본래 이기붕의 아들이다. 이승만은 전처와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두었었는데, 그는 미국에서 병사했고 항상 아들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승만의 새 부인인 프란체스카와 사이에서는 후손이 없다. 그래서인지 프란체스카는 이강석을 끔찍이 아꼈다고 한다. 이승만의 아들을 향한 집념과 프란체스카의 이강석에 대한 애정을 노려 이기붕은 1957년 3월 26일에 이강석을 이승만에게 양자로 바쳤다. 정권 2인자의 아들이자 이승만의 아들이라는 점때문에 이강석은 순식간에 권력 실세가 되었다. 그러니까 왕조 시대 왕자처럼 된 것이다. 사람들도 그렇게 이강석을 떠받들었다. 왕조 시대의 관념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왼쪽부터 이기붕, 프란체스카, 이승만, 이강석, 박마리아(이기붕의 처)



강성병이 이강석을 사칭한 것은 이런 분위기에서 가능했다. 강성병은 대구 출신으로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놀고 있었다. 우연히 자신의 외모가 이강석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꺠달은 강성병은 8월 30일 경주로 내려가 경주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건다. "나 이강석이오"라는 말 한 마디에 경주 경찰서장은 서둘러 이강석을 찾았다. 경주 경찰서장은 다방에서 강성병을 만나자 “귀하신 몸이 어찌 홀로 오셨나이까.”라며 황송해 했다. 자신감이 생긴 강성병은 경주 경찰서장에게 "아버지의 명으로 수해 상황을 살피러 왔다"고 말했다. 그 무렵, 태풍 ‘아그네스’가 영호남 일대를 강타해 피해가 속출하던 무렵이었다. 꽤 적절한 거짓말을 찾은 셈이다. 경주 경찰서장은 확인도 안해보고 강성병을 특급 호텔로 모신 후 다음 날에는 자신이 직접 경주 시내 관광 가이드를 자처하며 "모셨다". 이거 진짜 웃기는 추태 아닌가.

"경무대에서 똥을 치는 분이오". 고바우, 경무대의 권력을 풍자하다.

문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강성병은 그날 영천으로 향했다. 경주 경찰서장은 차까지 내놨고 영천 경찰서장에게 미리 연락했다. 영천 경찰서장의 반응도 경주 경찰서장의 반응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안동에서는 지역 유지들로부터 돈까지 받았다. 여비와 수해 의연금이란 명목이었다. 이어 대구로 향한 강성병은 똑같은 행각을 벌이다 진짜 이강석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경북도지사의 아들때문에 정체가 발각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경주 경찰서장의 굽신거리며 아부떠던 "귀하신 몸"이란 표현이 전국구 유행어가 되었다. 이 표현은 다음 해인 1958년 1월 23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만화에도 실려 경무대의 권력을 풍자하는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 만화가 동아일보에 실린 후 고바우를 그린 김성환 화백은 경찰서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나중에 강성병은 법원에서 “언젠가 신문을 보니 서울 명동파출소에서 이강석이 헌병의 뺨을 때리고 행패를 부려도 아무일이 없음을 알게 됐다. 이강석이라면 무엇이든 통하는 세상이라고 믿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강성병의 믿음을 경주 경찰서장, 영천 경찰서장, 안동의 지역 유지 등은 유감없이 입증해주었던 것이다. 자칭 지역 유지들이야 민간인이니 그렇다 치고, 경주 경찰서장과 영천 경찰서장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한심한 자신들의 추태에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리를 지키려고 애를 썼을까, 아니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못견뎌 자진 사표를 냈을까. 어느 쪽이건 "나 이강석이오"라는 말 한 마디에 굽신의 끝을 보여준 두 사람의 추태는 변함이 없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강성병은 1963년에 자살했다고 한다[각주:1]. 진짜 이강석은 1960년 4.19 혁명 후 이승만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2일 후인 4월 28일에 친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을 모두 총으로 쏘아 죽인 후 자살했다. 그런데 이강석의 가슴과 머리에 각각 총상이 있어서 자살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상황이라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그냥 묻혀졌다.

권력 기관을 사칭하여 사기를 치는 것은 이강석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청와대 사칭"이라는 말로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지금까지 발생한 온갖 종류의 사칭 사건이 검색된다. 정권을 가리지도 않는다. 매번 모든 정권에서 청와대를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나타난다. "허허, 날 못믿소?"라고 화를 내는 척 하면 찍소리 못하면서 뒷구멍으로 불법 이득을 취하려는 쥐새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가장 최근의 청와대 사칭은 청와대 비밀조직원으로 행세하며 투자금 수억 원을 가로챈 50대 여성이 붙잡힌 사건이다. 불과 3개월 전인 2010년 7월 22일의 YTN 보도다. 여전히 "청와대"를 들먹이면 사기가 먹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사칭만이 권력을 사칭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신정아 석.박사 학위 논문 표절 사건처럼 정치 권력이 아니라 "학벌 권력"을 사칭하는 사례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정치 권력 기관도 청와대만 사칭하지는 않는다. 올해 초 자율형 사립고 입시 부정 132명의 합격을 취소한 사건도 있으며, 음대나 미대같은 곳의 입시 부정 사건도 큰 풍파를 일으킨 바 있다. 이런 사건들은 권력에 기대어 출세하거나 부정한 방법이건 뭐건 그따위는 상관없이 큰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천박한 천민 자본주의의 쥐새끼 정신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탓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탈세/위장전입 같은 탈법과 권력을 가졌다고 공무원을 하녀로 부리는 것이 상식이 아닌 사람 사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거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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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날 다른 사건 ]
■ 1453년, 이탈리아 전쟁에서 활약한 스페인 장군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Gonzalo Fernandez de Cordoba) 태어남
■ 1482년, 크림-타타르(Krim-Tataren)가 키에프를 노략질하다.
■ 1535년, 프랑스 항해가 자끄 까르띠에(Jacques Cartier)가 현재의 몬트리올에 도착하다.
■ 1715년,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왕(1643∼1715) 루이 14세(Louis XIV) 사망하다
■ 1870년, 나폴레옹1세, 세당에서 포위당하다. 포위망 돌파를 시도하나 실패한다.
■ 1914년, 세인트 피터스버그가 페트로그라드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도시 이름을 바꾸다.
■ 1917년, 독일군 리가(현재 라트비아의 수도)를 점령하다.
■ 1918년, 미군이 러시아 적백내전에서 백군을 지원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에 상륙하다.
■ 1918년, 만해 한용운(韓龍雲), 불교 월간지 `유심'(惟心) 창간
■ 1923년, 관동대지진과 재일한국인 교포를 대학살한 사건이 일어나다.
■ 1937년, 일제, 고등보통학교의 조선어 과목 폐지
■ 1939년, 나치 독일, 오전 4시 45분에 폴란드 침공.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 1940년, 나치 독일 유대인에게 노란색 다윗의 별을 달도록 명령하다.
■ 1940년, 미국 해군 대서양함대 사령관 킹 제독이 뉴펀들랜드와 아이슬란드 사이 해역에서 호송선단 보호를 영국으로부터 인수하다.
■ 1942년, 독일군이 타만 반도(Taman peninsula)를 점령하다.
■ 1942년, 독일군 15기갑사단에 의한 알람할파능선공격 공격 실패.(북아프리카)
■ 1944년, 캐나다군이 프랑스 디에프를 점령하다. 1942년에 굴욕을 당한 그곳이다.
■ 1945년, 라오스 파테트라오 독립선언
■ 1945년, 조선민주당 결성, 24일 국민당으로 개편(위원장 안재홍)
■ 1945년, 조선학병(學兵)동맹 결성
■ 1946년, 그리스 국민투표로 왕제(王制) 부활
■ 1946년, 북한 노동신문 창간하다.
■ 1947년, 한국의 국제무선부호를 `HL`로 결정
■ 1948년, 서독 제헌의회 개최
■ 1951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 체결.
■ 1952년, 대한민국 정부 징병제를 실시하다.
■ 1961년,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25개국, 제1차 비동맹 정상회담 개최 (∼6일; 베오그라드); 7일,<베오그라드 선언> 발표
■ 1965년, 대한민국, 베트남 전쟁 첫번째 파병부대인 십자성 부대 창설하다.
■ 1965년, 인도와 파키스탄 전면전에 돌입하다.
■ 1969년, 무아마르 알 카다피 대위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리비아 왕정을 무너뜨리다.
■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 1979년, 파이오니어 2호 토성서 자장(磁場)확인, 토성 2만2000km까지 접근, 토성테두리 사진 등을 지구에 전송
■ 1980년, 전두환 11대 대통령으로 취임.
■ 1981년, 중앙아프리카 콜링바 (Kolingba)장군이 군사쿠데타 일으킴. 다코(David Dacko) 대통령 실각 후 도주
■ 1982년,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alestinian Liberation Organization,PLO)가 레바논(Lebanon)을 떠나다.
■ 1983년, KAL 007기 격추
■ 1991년, 리펑(李鵬) 중국 총리, 소련 공산주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고수 방침 천명.
■ 1992년, 이우정 등 남한 여성계 대표 30명,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참석위해 평양 도착
■ 1993년, 한국, 과학관측로켓 `과학2호`발사
■ 1996년,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2차 공사 통수식
■ 1996년,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군함 2척,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처음으로 부산에 입항
■ 1999년, 파나마 첫 여성대통령 미레야 모스코소 취임
■ 1999년, 체첸 반군 사령관 샤밀 바샤에프, 러시아군에 맞서 '성전'을 지속할 것임을 공표
■ 2004년, 체첸 반군, 러시아 북오세티아 공화국 베슬란시 초등학교(Beslan school)에서 인질극
■ 2009년, 대한민국 배우 장진영 죽음

[ 비슷한 사건 ]


[ 관련 사건 ]



  1. 동아일보, [책갈피 속의 오늘]1957년 가짜 이강석 구속 (2007년 12월 31일 자 기사). [본문으로]

Trackbacks 0 : Comments 1
  1. Favicon of https://goddls1.tistory.com BlogIcon 행인1 또는 甲士1 2010.09.01 17:52 신고 Modify/Delete Reply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죠. 그 배경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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