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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8월 13일] 1899년, 스릴러 영화의 대명사 알프레드 히치콕 태어나다.


오늘의 역사/8월 2010.08.13 00:48

1899년 8월 13일, 영국 런던레이튼스톤(Leytonstone)에서 스릴러 영화의 대명사인 알프레드 히치콕이 태어났다. 히치콕은 공포, 스릴러 영화로 유명하며, 제작, 각본, 편집, 미술 등에도 참가했다. 그의 작품은 자주 평범한 남자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린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사소한 실수가 불러온 상황에 책임을 지고 상황을 헤쳐나가는 줄거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가 만든 서스펜스 스릴러 작품은 수많은 영화에서 오마쥬되거나 영화학도는 꼭 공부하는 작품이 되었다.

알프레드 히치콕

1920년에 처음 영화계에 입문한 히치콕이 처음 감독한 영화는 1922년에 감독한 《Number 13》이라는 무성 영화다. 이때는 미술 감독 일을 병행하고 있을 때였다. 미술 감독 일은 1925년까지 하고 그 이후에는 영화 연출 일만 했다. 무성 영화는 1929년까지 만들었고, 1929년 《Blackmail》부터 발성 영화를 연출했다. 이 영화로 히치콕은 재능을 인정받았고, 《The 39 Steps》(1935년) 등을 연출했다. 이 무렵에 이미 심리의 불안감을 교묘하게 유도하는 자신만의 연출 방법을 확립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만들어진 수많은 다른 영화들처럼 필름을 잃어버린 게 많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다음 해인 1940년, 히치콕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David O. Selznick)이 그를 미국으로 초청한 것이다. 헐리우드에서 히치콕은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와 조앤 폰테인(Joan Fontaine)이 출연한 《Rebeca》(1940)로 헐리우드에서 첫 작품을 만들었고, 《Foreign Correspondent》 (1940), 《Shadow of a Doubt》(1943), 《Notorious》 (1946), 《Rope》 (1948) 등으로 스릴러 영화의 제1인자가 되었다. 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도 당대 일류 스타들이었다.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 캐리 그랜트(Cary Grant),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티피 헤드렌(Tippi Hedren) 등 그의 영화와 더불어 기억되는 스타 배우들과 함께 영화사상 처음으로 극장 간판에 얼굴이 걸리는 스타급 감독으로 떠올랐다. 이들 중에서 캐리 그랜트는 히치콕이 특히 좋아한 배우였다.

1950년대에 히치콕은 《현기증, Vertigo》 (1958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1959년), 《사이코, Psycho》 (1960년), 《새, The Birds》 (1962년)로 이어지는 걸작을 발표하면서 감독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솔직히 이중에서 내가 본 영화는 《새, The Birds》뿐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 봤을때 새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들에 두려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불을 뒤집어 쓴 기억은 없지만 말이다. 《레지던트 이블 3》에서 T-바이러스에 감염된 까마귀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은 《새, The Birds》 에서 새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장면을 오마쥬한 걸까? 아뭏튼 이 외에도 히치콕은 계속 히치콕식 영화를 만들었으며, 마지막 작품은 1976년에 연출한 《Family Plot》이다.

히치콕의 영화 작품에는 오늘날 블록버스터라 부를만한 작품은 거의 없지만, 그가 구사한 수법은 소위 블록버스터 영화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히치콕 영화 줄거리의 기본 구성은 현대 액션 영화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히치콕이 정립하고 후배 감독들이 그 틀을 차용한 것이겠지만. 주인공은 남자이고, 어떤 계기로 누명을 쓰던 실수를 하거나 모함에 빠져 위기를 맞게 된다. 그를 추격하는 추격자들이 있고 그들을 피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위기를 헤쳐나가고 미인인 여자가 등장해 남자 주인공을 돕는다는 것이 히치콕 영화의 기본 구성이다. 이런 구성은 액션 영화에 흔한 Plot이다. 윌 스미스(Will Smith) 주연의 《Enemy of the State》도 그런 구성이고, 007 시리즈는 본드걸과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구성이 아닌가. 《글래디에이터》도 기본은 이런 구성이다. 그리고 히치콕은 카메라 무빙 및 구도, 편집, 음악을 적절히 사용하여 관객들을 긴장시키고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났다. 그리고 작품마다 현대인들의 사회와 현실에 대한 공포와 불안, 반사회성 요소들을 가미하여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자유자재로 표현했던 감독이었다. 그러고 보면, 현대 영화는 컴퓨터 특수 효과를 엄청나게 의존하긴 하지만, 기본이 되는 촬영 기법이나 Plot 구성 등은 의외로 40~60년대 영화들에게서 크게 발전한 것 같지는 않다. 그 당시 영화들을 지금 보면 담백하게 보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영화사에 숱한 발자취를 남긴 히치콕은 1980년 4월 29일 오전 9시 17분에 자택에서 천수를 다하고 편안하게 침대에서 죽었다.

여담이지만, 히치콕의 정식 이름은 Sir Alfred Joseph Hitchcock, KBE이다. KBE는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제국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 중 2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래서 "Sir"라는 호칭을 붙인 것이다. 물론 훈장과 귀족 작위를 받는 바람에 정식 이름이 그렇다는 것이지 알프레드 히치콕이라 부른다고 잡아갈 사람은 물론 없다. 요즘 마음에 안든다고 몰래 뒷조사하거나 백주 대낮에 사람 패고 다니는 패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미 작고하신 영국 신사 히치콕 선생이 그런 짓을 할리는 없으니까.

▶참고자료
[키워드] 히치콕, 서스펜스
[분야] 영화,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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