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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8월 8일] 1988년, 군부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버마 민중의 8888봉기 일어나다.


오늘의 역사/8월 2010.08.08 00:00

1988년 8월 8일, 버마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1962년부터 계속된 군부 독재 정권을 끝장내자는 의지로 전국에서 파업이 일어났고, 대부분의 대중이 시위를 벌이며 독재 정권에 투쟁했다. 이 과정에서 3,000여명이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숫자는 모른다. 1962년부터 정권을 장악했던 버마 군부는 당황했고, 불과 두 달 동안에 대통령이 3명이나 바꾸었다.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9월 18일, 소 마웅 장군이 다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하고 1990년에 총선거를 실시하겠다며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기 시작했다. 1990년 5월 27일, 군부는 일단 약속대로 총선거를 실시했다. 그러나 아웅 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가 81%의 득표로 대승을 거두자 군부는 정권 이양을 거부하고 아웅 산 수지 여사를 감금하며 민주화 운동가들과 야당 세력을 탄압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미얀마는 조금씩 민주화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군부 정권은 독재 통치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버마(미얀마)[각주:1]는 1885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48년에 아웅 산(Aung San)의 지도로 독립했다. 다만, 아웅 산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47년 7월 19일에 암살당했다. 독립 이후 1962년까지 버마는 민주주의 국가로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부유한 국가로 발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웅 산은 버마 건국의 아버지이자 버마 공산당(Communist Party of Burma) 창립자였다. 그러다 1962년 3월 2일 네 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의회가 소수 민족 자치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준비하자, 불교 국교화를 무색케 하며, 국토 분할을 가져올 수 있다며 네윈을 비롯한 군부가 반발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카렌족은 기독교를 믿는 부족이다.

이후 버마는 소위 버마식 사회주의라며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Burma Socialist Programme Party, BSPP)을 내세워 철권 통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버마 경제는 피폐해졌고, 버마족을 제외한 소수 민족들은 버마족 중심의 군부 탄압을 받았다. 영화 《람보4: 라스트 블러드》(Rambo IV: In the Serpent's Eye, 2008)는 소수 민족 중 카렌 족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1962년 ~ 1988년까지 26년 동안 네윈이 집권하는 중 버마 경제는 완전히 망가졌다. 중앙집권 경제로 사기업은 실종되고

1988년 8월 8일, 랑군 시내에 집결한 시위대 (출처:영어 위키피디어)

자유 시장 경제 역시 사라졌다. 군부 독재 정권이 해외 수출과 수입 기업을 통제하면서 원자재 뿐 아니라 기본 필수품도 부족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자연히 암시장과 밀수가 성행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산업 원자재의 부족 때문에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실업증가율은 노동자 계급 사이에 불만을 초래했다. 농민들도 쌀을 살 수 없을 정도였다. 경제 뿐만 아니라 건강과,교육 수준도 떨어지면서 버마 국민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타나는 공무원들의 부패와 인플레이션은 국민들의 불만이 터지지 직전이었다. 나라 경제는 망가지고 국민은 피폐해지는 동안 군사 독재 정권은 세계의 갑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계속 쌓인 불만은 뭔가 하나 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터질 상태였다.

1988년 3월 12일 앙곤 공과대학생들과 동네 청년들이 시비에 붙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것은 어느 음악 테이프였다. 술에 취한 청년과 공과대학생이 좋아하는 음악이 담긴 테이프를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시비가 붙은 청년 중 한 명의 아버지가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Burma Socialist Programme Party, BSPP) 경찰이었다. 그 경찰은 학생을 미행하여 체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학생들은 지역 경찰서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경찰은 500여명의 진압 경찰대를 보내 시위대를 강제 진압했고 이 과정에서 2명의 학생이 경찰에 죽었다. 격분한 학생들은 시위를 계속 벌였다. 3월 16일에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여학생들이 경찰에 강간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경찰은 숨이 붙어 있는 학생을 그냥 화장시키기도 했고, 질식사하기도 했다. 군부 정권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를 벌이긴 했지만, 그들이 발표한 조사 결과 보고서는 "진상 조사를 위해 노력했다"는 뜻에 불과하다. 학생 시위는 중고등학생까지 퍼져 6월에도 계속되었다. 네윈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BSPP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네윈은 물러나면서 “만일 더 이상의 분열적 소요사태가 있을 경우 군대가 발포할 것이며 그 발포로 죽게 될 것이다"라고 한 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얀 정복을 입고 시위에 가담한 버마 해군 병사들.(출처:영어 위키피디어)

버마 대학생들의 조직인 전국 버마 학생 연합(All Burma Federation of Student Unions) 들8월 1일부터 전국에 걸친 봉기를 8월 8일에 일으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하 저항신문들이 총동원되고, 학생들은 포스터와 팜플렛을 뿌렸다. 이 시위에는 승려, 학생, 노동자, 농민,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공군과 해군의 군인도 있었다. 8월 8일, 드디어 랑군 도심 한복판에서 학생들이 준비한 전국 규모 파업 및 봉기가 일어났다. 시위 참가자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을 뿐만 아니라 불교도, 기독교도, 이슬람교도처럼 서로 종교도 상관하지 않았다. 직업도 관계없이 오직 네윈과 군부 독재 정권 타도라는 목표를 위해 시위에 참가했다. 시위는 9월 중순까지 계속 되었다. 군부는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총선을 약속하면서 한편에서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무력 진압을 병행했던 것이다.

아직 미얀마는 군사 독재 국가이고, 386세대와 비슷한 소위 8888세대는 전 세계에 흩어져 지금도 반 군사 정권 활동을 벌이고 있다. 8888 봉기 후 아웅 산 수지 여사를 지도자로 하여 민주화 세력이 집결한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버마 독립의 영웅 아웅 산 장군의 딸인 아웅 산 수지(Aung San Suu Kyi) 여사는 8888봉기때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러나 이후 아웅 산 수지 여사는 툭하면 가택 연금을 당하며 외부와 접촉을 차단당하고 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조차 만나기 힘든 인물이다. 물론 아웅 산 수지가 만남을 거부하거나 거만하고 바빠서 그런 게 아니라 미얀마 군부가 못만나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아웅 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미얀마 민주화 운동가들의 시위에서는 항상 이름이 언급된다. 그리고 또 하나, 《Beyond Rangoon》이란 영화가 있다. 1995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8888 봉기 당시 실제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그리고보니,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짓을 하고 있던 놈들이 만나려 했다가 거기에 또 다른 비슷한 놈이 훼방을 놓은 사건이 있다. 전두환이 네윈을 만나러 갔다가 김일성에게 테러당한 아웅 산 묘역 폭탄 테러 사건이다. 그런데 좌빨이라고 하면 언제나 핏대를 세우던 자들이 사회주의 정권의 수장을 만나서 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을까. 장기 집권의 비결이라도 궁금했던 걸까.

▶참고자료
[키워드] 8888봉기, 민주화 운동, 버마, 미얀마, 군사 독재, 네윈, 아웅 산 수지
[분야] 미얀마, 민주화 운동

[ 같은 날 다른 사건 ]


[ 비슷한 사건 ]
■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다.

[ 관련 사건 ]



  1. 1990년 이후 버마 군부 독재 정권은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었다. 과거의 이미지를 숨기기 위한 의도라지만, 버마 민주화 운동가들은 "미얀마"라는 국호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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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zzz 2011.06.29 00:12 신고 Modify/Delete Reply

    게시판넘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은 군사정권이라도 울나라 군사정권은 공 과를 나눈다면 공이 열라 큰 정권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 그게 왜 민주화운동이냐 무장폭동이지 칼빈슨이 왜 울나라로 출동햇었는지는 아냐 당시 북괴군의 동행은 ㅋㅋㅋ 병진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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