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 [오늘의 역사 - 8월 7일] 1947년, 하이에르달이 뗏목으로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다.


오늘의 역사/8월 2010.08.07 17:43

1947년 8월 7일, 노르웨이 인류학자 토르 헤위에르달(Thor Heyerdal)과 동료 5명이 발사 나무로 만든 똇목을 타고 페루를 떠난 지 101일만에 6980km를 항해하여 프랑스령 폴리네시아투아마투 섬(Tuamotu Islands)의 Raroia 환초에 도착했다. 헤위에르달은 이 탐험으로 선사시대에 페루에 살고 있던 정체 불명의 백인들이 태평양을 건너 폴리네시아 제도로 건너갔다는 자신의 이론을 직접 몸으로 입증했다.

토르 헤위에르달(Thor Heyerdahl)은 1914년 10월 6일생으로 노르웨이 라르빅(Larvik) 출생이다. 헤위에르달은 인류학자로 폴리네시아 문명을 연구하던 중에 이상하게 페루의 전승 신화와 폴리네시아인들의 전승 신화 사이에 묘한 일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페루의 전승 신화에는 정체 불명의 백인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부족장은 티키 비라코차(Tiki Viracocha)라 했다. 이들은 태양신 비키를 모시는 종족이었다. 오늘날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 살던 이들은 외부인의 침략에 밀려 바닷가로 도망쳤다가 거기서 서쪽으로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데 폴리네시아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조상이 먼 서쪽 바다에서 온 흰 수염난 백인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실제로 폴리네시아인들 중에는 18~19세기에 섬을 찾아온 유럽 백인과 혼혈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종종 백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 폴리네시아인들을 찾은 유럽 백인들도 그런 사람들을 보고 놀랍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페루와 폴리네시아에서는 고구마를 쿠마라라고 불렀다. 양쪽의 신화와 거석 문화를 비교연구한 끝에 토르 헤위에르달은 페루 티티카카 호수에 살던 태양신 티키를 모시던 정체 불명의 백인들이 태평양을 가로질러 폴리네시아로 이주했고, 이들이 폴리네시아인들의 기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날 폴리네시아인들이 모두 백인이 아닌 것은 나중에 북쪽 아시아에서 내려온 다른 인종과 뒤섞인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주장은 인정을 받지 못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수천km나 떨어져 있는 페루에서 어떻게 폴리네시아로 갈 수 있겠냐며 그의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열받은 헤위에르달은 자신이 직접 태평양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옛날 방식으로. 제일 먼저 같이 갈 동료들을 규합하고, 페루로 건너가 배를 만들 재료를 찾았다. 페루 인디오들이 사용하는 발사 나무로 똇목을 만들 계획이었다. 발사 나무는 밀도가 낮아 아무리 많은 물을 빨아들여도 가라앉지 않는다[각주:1]. 헤위에르달은 발사 나무로 잉카식 똇목을 만들고, "콘티키"(Kon-Tiki)라는 이름을 붙였다. 뗏목 말고 식수와 식량도 잉카식으로 준비했다. 식수는 물이 통하지 않는 대나무 안에 채운 다음 구멍을 송진으로 막아 준비했고, 식량은 고구마와 대추야자를 준비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무전기 같은 현대식 물품도 몇개 싣기는 했지만.

콘티키 박물관에 전시 중인 콘티키 호. (출처:영어 위키피디어)



4월 28일, 탐험대는 드디어 페루 카야오에서 태평양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뗏목 항해에 익숙하지 않았던 탐험자들은 며칠 지나자 익숙해졌다고 한다. 부족할 것 같던 식량을 바다가 해결해줬다. 길이 8.8m에 불과한 뗏목 주변이 바다가 아닌가. 우선 밤새 자고 일어나면 똇목에 날치가 가득했다. 바다 위로 뛰어오르는 습성이 있는 날치가 평소처럼 뛰어 올랐다가 재수없게 콘티키호의 갑판에 떨어져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하여간 대원들은 그냥 갑판에 널린 날치를 주워(!) 구워서 구이 요리를 해먹었다. 그리고 날치가 지겨우면 날치를 미끼로 다른 더 큰 물고리를 잡았다. 다랭이, 돌고래 같은 것들이다. 돌고래를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아뭏튼 식량은 6명이 연명(?)하기엔 너무 넘쳐 흘러서 문제였고 딱히 식량을 보관하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똇목 바닥에는 해초가 자랐고, 해초 사이에 조개가 자랐다. 그것들도 좋은 식재료였다. 물은 대나무에 채운 것으로도 충분했지만, 적당한 비율로 바닷물을 섞어 마시면 갈증도 쉽게 해결했다.[각주:2]. 무역풍과 적도 윗쪽으로 흐르는 해류를 이용해서 뗏목은 시속 1.7km로 꾸준히 서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101일만에 폴리네시아에 도착했다. 헤위에르달은 자신의 이론으로 직접 몸으로 입증해보인 것이다. 아래 동영상은 당시 촬영한 콘티키호의 모습이다. 저게 진짜 콘티키호냐고 물어보신다면 맞다. 콘티키 박물관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이다.



항해 성공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조그만 똇목으로 태평양 7000km를 항해했다는 것은 헤위에르달의 이론을 입증하는 학술 문제를 떠나 사람들에게 굉장한 흥미거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헤위에르달은 1948년에 자신의 탐험기를 책으로 펴냈고, 몇 십개 국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적이 있다. 지금은 안팔려서 품절된 것 같은데 아마 도서관에 가면 있지 않을까 싶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간단하게 축소서술한 책은 몇 개 있지만, 헤위에르달이 쓴 책을 보려면 도서관에 가야 하지 싶다. 그리고 헤위에르달이 제기하고 몸으로 입증한 가설은 결국 정설로 채택되었다.

헤위에르달은 2002년에 죽었지만, 콘티키호는 현재 오슬로의 콘티키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오슬로를 여행하실 분들이라면 이 박물관도 들러보는 것이 어떨까.

콘키키호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지난 1998년에 발해와 일본의 뱃길을 재현하겠다며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한 >발해 1300호다. 발해1300호도 헤위에르달처럼 발해와 일본 사이에 겨울에 항해가 가능했음을 입증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탐험대원 4명 모두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참고자료
[키워드] 페루, 폴리네시아, 헤위에르달, 콘티키, 신화,
[분야] 페루, 폴리네시아, 인류학

[ 같은 날 다른 사건 ]



[ 관련 사건 ]



  1. 발사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인테리어 재료 등으로 팔고 있다 [본문으로]
  2. 포카리스웨트같은 소위 이온음료도 따지고 보면 그냥 소금물이다 [본문으로]

Trackback 0 : Comment 0

Write a commen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