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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8월 6일] 1988년, 군 정보사 언론인에게 백색 테러 감행.


오늘의 역사/8월 2010.08.06 02:05

1988년 8월 6일, 군 정보사 요원들이 출근하던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사회부장에게 백색 테러를 가했다. 범인들은 오홍근 사회부장을 주먹으로 때려 기절시킨 후 허벅지를 칼로 찔러 깊이 3cm, 길이 30cm에 달하는 부상을 입힌 후 달아났다. 오홍근 부장이 쓴 칼럼에 불만을 품고 정보사 차원에서 저지른 백색 테러였다.

오홍근 사회부장은 월간중앙 4월호부터 "오홍근이 본 사회"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칼럼을 쓰면서 수차례 협박전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8월호에 "청산해야할 군사문화"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후 협박은 노골화했다. 회사로 항의편지가 오거나 집으로 주소와 신원을 확인하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아침 백색 테러를 당한 것이다.

경찰은 기사 내용에 불만을 품은 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다행히 목격자가 있었다. 오홍근 사회부장이 살던 삼익아파트 경비원 이모씨였다. 이모씨는 사건 당일 새벽에 수상한 차 한 대를 보고 차량 번호를 메모했다. 차번호는 "서울1라3406호"였고, 차량은 쑥색 포니2였다. 사건이 발생한 후 이씨는 경찰에 자신이 메모한 차량 번호를 제출했다. 경찰이 차적 조회를 하자 이 차는 정보사 소유 차량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정보사령부 측에서는 자신들이 관련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정보사는 유력한 증거인 차량을 변조하기 까지 했다. 경찰이 차량을 압수한 후 경비원 이씨에게 확인시키자 번호는 맞는데 차 색깔은 쑥색에서 은백색으로 바뀌었고, 이씨가 봤을떄는 없었던 물건들이 달려 있었다. 김창룡 사건때처럼 범인들이 차량을 범행 후 차량을 개조하여 은폐를 시도한 것이다

물론 차량만으로는 확실하게 범행 사실을 밝혀내기 곤란한데다가 변조까지 된 상태에서 다른 증거도 없고, 피해자 오홍근 부장도 범인들의 얼굴을 기억해내지 못하면서 경찰 수사는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워터게이트 사건떄처럼 한국판 Deep Throat가 나타났다. 8월 23일 익명의 제보자가 중앙일보에 “육군 5616부대 휘하의 한 파견부대원 4명의 사건당일 행적에 의심이 간다”며 범인들의 인적사항을 제보한 것이다. 이 한국판 Deep Throat의 제보는 국방부에도 전달되었고, 육군범죄수사단이 수사에 착수했다. 육군범죄수사단은 제보에 따라 육군 정보사 박철수 소령, 김웅집 하사, 이우일 하사, 남정성 하사 등 4명을 연행하여 그날부로 범행 사실을 자백받았다. 4월에 첫 칼럼 이후 줄곧 군을 비판하는 태도를 취해온 오홍근 부장에 대한 불만이 쌓인 상태에서 범인들은 오홍근 부장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군사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쓴 것에 격분하여 직접 테러를 하기로 했다고 자백했다.

실제 범행을 저지른 4명을 체포했지만, 축소 수사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장성급이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평민당 등 정치권은 국정조사권 발동을 거론하며 정치쟁점화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서둘러 추가 수사에 나섰고 8월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방부가 발표한 사건 전말은 이렇다, 7월 22일, 육군정보사령부의 이규홍 준장이 칼럼 내용에 불만을 품고 오부장을 혼내주라는 지시를 박철수 소령에게 내렸고, 박 소령은 부하인 안선호 대위, 김웅집 하사, 이우일 하사, 남정성 하사를 동원하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8월 2일 박철수 소령은 이규홍 준장에게 테러 계획을 보고한 후 8월 6일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규홍 준장은 8월 8일 정보사령부 참모장 권기대 준장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했고, 권 준장은 목격자들이 진술한 ‘서울1라 3406호 포니2’ 차량을 개조하고, 운행일지도 변조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육군정보사령관 이진백 소장은 범행 발생 5일 후인 11일 이 준장과 권 준장으로부터 사건전모를 보고받고도 묵인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재판 결과는 가벼웠다. 10월 10일 육군보통군사법원 심판부이홍규 준장과 박철수 소령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을 뿐이다. 이 형은 그대로 확정되었고, 이진백 소장과 권기대 준장은 예편조치되는 것으로 그쳤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단지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몰래 폭력을 휘둘러 입을 막으려는 시도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관행이다. 이 사건은 1988년에 일어났지만, 21세기에도 여전하다. 지난 7월 17일에도 우익단체 소속으로 의심되는 3명이 촛불 관련 시민을 30여분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폭행하여 겁을 줘서 입막음하려는 방법이 통하던 시대가 분명히 있기는 있었다. 아마 앞으로 오홍근 부장 테러 사건이나 정모씨에 대한 테러 사건 같은 일은 또 일어날 수도 있다. 10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것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믿는 것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으니까.

▶참고자료
[키워드] 정보사, 백색 테러, 언론 탄압, 오홍근 부장,
[분야] 정치, 대한민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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