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 [오늘의 역사 - 8월 2일] 2002년, 앙골라반군 군대 해산으로 27년 앙골라 내전 완전 종결


오늘의 역사/8월 2010.08.02 01:04

2002년 8월 1일, 그해 4월 4일에 체결했던 휴전 협정의 이행 조치 중 하나로써, 내전을 주도했던 반군이 5만여명의 군대를 UN 감독하에 무장을 해제하고 해산했다. 이로써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이후 무려 27년을 끌었고, 내전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미국, 소련, 중국, 쿠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역시 내전 중이던 이웃 콩고까지 한때 개입하여 50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앙골라 내전이 완전히 끝났다.

앙골라는 포르투갈 식민지였다. 1974년 포르투갈에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onio de Oliveira Salazar)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이른바 카네이션 혁명(Carnation Revolution)[각주:1]으로 집권한 신정부는 모든 식민지에 독립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1975년 11월 11일, 앙골라는 정식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내전의 흔적이 역력한 어느 집 (출처:BBC 뉴스)

포르투갈령(領) 앙골라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앙골라 해방인민운동(Popular 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Angola, MPLA), 우익 성향의 앙골라 해방민족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of Angola, FNLA), 앙골라 완전독립민족동맹(National Union for the Total Independence of Angola, UNITA)의 3개 조직[각주:2]이 대립하면서 대(對)포르투갈 무장투쟁을 전개해왔다. 문제는 이들이 특정 부족이 중심이 된 단체들로서 서로 적대시했다는 점이다. MPLA는 음분두족, FNLA는 바콩고족[각주:3], UNITA는 오빔분두족이 주도하고 있었다. 독립을 준비한 후에 MPLA와 UNITA는 과도정부를 만들고 의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으나, MPLA는 약속을 어겼고, 결국 정권 장악을 둘러싸고 내전을 시작했다. 정치 성향이 UNITA와 비슷한 FNLA도 UNITA와 연합하여 MPLA와 게릴라 전에 돌입했다.

앙골라 내전은 강대국들의 대리 전쟁이기도 했다. 소련은 쿠바를 앞세워 MPLA를 지원했고, 미국은 MPLA-UNITA를 지원했다. 쿠바는 베트남 전쟁 초기 미국처럼 군사고문단이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파병했다. 여기에 백인 정권 시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앙골라 내전에 끼어들었다.[각주:4]. 5만여명에 달했던 쿠바군은 1991년에 철수했고, 백인 정권이 무너진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군대를 철수시켜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두 당사자들만 남았다. 그러나 그들 뒤에는 여전히 앙골라의 지하 자원을 탐낸 외국이 있었다.

앙골라 내전은 요약하자면, 지하자원을 탐낸 외국과 권력을 탐낸 앙골라 내 3개 부족의 권력 쟁탈전이라고 할 수 있다. MPLA는 석유를 팔아 군대를 무장시켰고, 반군측은 다이아몬드를 팔아 군대를 무장했다. 일반 국민들은 풍부한 지하 자원의 혜택을 누릴 수가 없었고, 군대만이 혜택을 누렸다. 그 중에 하나가 지뢰다. 내전 중에 몇 개가 매설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닥치는 대로 뿌리고 봤기 때문이다.[각주:5] 프랑스도 오랜동안 반군에 무기를 지원해왔다. 물론 반군의 최대 지원자는 미국이었다.

정전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90년대에 들어와 몇 번 휴전이 있었지만, 오래 못가 깨지고 다시 전투를 재개하곤 했다. 문제의 핵심은 조나스 사빔비(Jonas Savimbi)라는 반군 지도자였다. 그는 계속 휴전을 거부하거나 깨고, 정부군과 교전을 계속 벌였다. 2002년 2월 22일, 앙골라 평화의 최대 걸림돌인 사빔비가 교전 중에 전사했다. 반군은 12일이 지난 3월 3일에 이 사실을 공표하고 후계자로 파울로 루캄바(Paulo Lukamba)를 세웠다고 발표했다. 앙골라 정부는 대담하게 3월 13일에 이날 자정을 기해 모든 공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994년 루사카 협정(Lusaka Protocol)에 따라 반군과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 루사카 협정은 1999년 전투로 유명무실해진 상태였다. 1975년에 당한 적이 있는 반군은 정부가 내민 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UNITA도 곧 협상에 응했고, 4월 4일 수도 루안다(Luanda)에서 양측은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휴전 협정의 주요 내용은, 1994년 평화협정 ‘루사카 의정서’를 발효한다는 것으로 UNITA 반군은 UN 감독 하에 무장을 해제하는 대신 반군 전원을 사면하며 UNITA의 정치, 군사, 사회 참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휴전 협정은 아르만도 다 크루즈 앙골라 정부군 합참의장과 아브레우 카모르테이로 UNITA 사령관이 서명했으며, 주제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Jose Eduardo dos Santos) 앙골라 대통령은 이날 수도 루안다에서 파울로 루캄바 UNITA 지도자와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1994년 이후 정부 수반과 반군 수뇌부가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그리고 8월 2일, 드디어 핵심 조치인 반군이 완전히 해산한 것이다

내전은 끝났지만, 앙골라가 갈 길은 멀다. 국제연합은 2003년에 앙골라인의 80%가 기본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잇으며, 60%는 물 부족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정했다. 또, 평균 수명이 40세가 되지 못하며, 특히 앙골라 어린이 중 30%가 5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고 추정했다. [각주:6] 내전 과정에서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외국군이 심어놓은 지뢰는 여전히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 지난 2003년에 "앙골라 지뢰 미인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여성들은 모두 지뢰 피해자들로 한쪽 발이 없는 경우가 많다. 발목 지뢰에 당한 것이다[각주:7] 이 대회는 2003년부터 계속 열리고 있으며, 캄보디아에서도 열리고 있다.

지뢰 미인대회 출전자들


현재는 평화롭게 전후 복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강대국들의 자원 쟁탈전으로 앙골라는 여전히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물론 자원의 핵심은 석유다. 자원이 너무 많아서 탈인 나라 중에 하나가 앙골라다.

내전 중에 숨진 앙골라인들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참고자료

[키워드] 앙골라 내전, 미국, 쿠바
[분야] 앙골라, 전쟁

[ 같은 날 다른 사건 ]


[ 비슷한 사건 ]


[ 관련 사건 ]



  1. 이 이름은 시민들이 살라자르 정권을 무너뜨린 쿠데타군 병사들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본문으로]
  2. 3개 조직의 약자는 포르투갈어를 약칭한 것이라, 영어 표기와는 조금 다르다. [본문으로]
  3. 콩고계 부족으로 나중에 자신들도 내전 중이면서도 콩고가 앙골라 내전에 끼어드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본문으로]
  4. 앙골라 내전에서 활약한 남아공의 준특수부대가 32대대인데,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디카프리오가 복무했던 부대로 설정된 부대다. 1994년 집권한 넬슨 만델라 정권은 이 부대를 해체했는데, 해체 후 이 부대 출신들은 민간 군사 기업을 세웠다. 그리고 과거의 적이었던 앙골라 정부와 용병 계약을 맺은 후 과거의 전우들인 앙골라 반군과 전투를 벌였다 [본문으로]
  5.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이 가장 애용하는 차량이 대지뢰 방어책을 특별히 고안한 RG-31 니얄라 같은 차량인데, 이 차량들은 앙골라 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개발한 차량이다 [본문으로]
  6. Polgreen, Lydia (2003-07-30). "Angolans Come Home to 'Negative Peace'". The New York Times. http://query.nytimes.com/gst/fullpage.html?res=9C02EEDF173EF933A05754C0A9659C8B63. Retrieved 2008-02-10.) [본문으로]
  7. 발목 지뢰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발목을 잘라내는 것 목적으로 하는 지뢰다. 전사자는 일단 그냥 현장에 버려두었다가 나중에 수습하면 되지만, 부상자는 즉시 옮겨야 한다. 부상자의 신음, 비명이 다른 병사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소한 2명이 부상병을 후방으로 옮겨야 하므로, 1명을 부상시켜 3명을 전력에서 이탈시키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지뢰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1 : Comments 2
  1. Favicon of http://goddls1.tistory.com BlogIcon 행인1 또는 甲士1 2010.08.02 13:52 신고 Modify/Delete Reply

    앙골라도 참 오랫동안 내전이 계속되었군요. 그나마 끝났다니 다행입니다.

    • Favicon of http://dcafe.tistory.com BlogIcon deutsch 2010.08.02 14:52 신고 Modify/Delete

      앙골라 내전은 어쩌면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릅니다. 27년 세월의 앙금을 고작 8년만에 다 풀었겠습니까. 게다가 부족 간 쟁탈전 성격도 강하니까요.

Write a commen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