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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11월 5일] 1605년, 가이 포크스, 영국 의회 폭파 직전에 체포.


오늘의 역사/11월 2010.11.05 00:00
1605년 1월 31일, 영국 의회 의사당을 폭파하려던 가이 포크스(Guy Fawkes 또는 Guido Fawkes)가 사전에 경고 편지를 받은 런던 경시청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가이 포크스는 의사당 폭파 음모를 꾸미던 가톨릭 교도 집단에서 실제 폭파 임무를 받고 의사당에 폭약을 설치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화약에 불을 붙이려던 순간 체포되는 가이 포크스.(출처:위키피디어)


이 사건은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영국 내 가톨릭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고, 사회 전반에 반 가톨릭 정서가 확산되었으며, 영국계 신교도들이 세운 미국에도 그 영향은 미쳤다.

헨리 8세가 바티칸 교황이 자신의 이혼을 허락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핑계로 영국 가톨릭 교회를 바티칸에서 독립시킨 후 성공회는 점차 영국 사회에 뿌리내렸다.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은 제임스 1세도 성공회를 내세워 자신의 절대 왕권을 강화하려고 시도한 군주였다. 다만, 제임스 1세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도 있는데, 제임스1세는 가톨릭에 너그러웠으나 성공회가 다수인 의회가 워낙 가톨릭에 강경한 태도를 보여 제임스 1세도 가톨릭 탄압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제임스 1세가 가톨릭 탄압을 자신이 적극 나섰던지, 의회의 압력에 그렇게 한 것인지는 당시 영국 내 가톨릭 교도들에게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가톨릭 교도가 보기에 당시 잉글랜드 왕실과 의회는 가톨릭교도 탄압에 "광분"해 있었던 것이고,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로버트 캣츠비(Robert Catesby)를 중심으로 한 가톨릭 교도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제임스 1세 암살 계획을 꾸몄다. 가이 포크스도 이 음모에 가담했다. 음모자들은 사전에 고위 성직자이자 영국 예수회 수장인 헨리 가넷(Henry Garnet)과도 의논하였고, 교황 바울 5세의 승인까지 받았다.

음모자들의 모습. 오른쪽 3번째가 가이 포크스로 Guido Fawkes라 씌여 있다.


음모자들은 의사당과 인접한 집을 한 채 사서 땅굴을 파고 국회 지하실까지 들어가 36통의 화약을 들여 놓고 그 위에 석탄과 장작으로 덮어 놓았다. 거사일은 11월 5일이었다. 그 날이 영국 의회 개회일로서 제임스1세와 상원, 하원, 그리고 왕비와 왕자까지 모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톨릭 교도들을 억압하는 억압자들을 싹쓸이하려고 계획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모자 중 한 명인 프랜시스 트레섬(Francis Tresham)이 자신의 처남인 몬티글 경에게 의회에 출석하지 말라는 경고의 편지를 보낸 것이 음모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트레섬은 처남은 살리고 싶어서 자세한 얘기는 물론 하지 않고 은근슬쩍 넌지시 얘기했지만, 몬티글 경이 당시 수상격이던 로버트 세실(Robert Cecill)에게 알렸고, 세실은 음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가이 포크스가 11월 5일에 의사당 지하에서 쌓아놓은 폭약에 불을 붙이려던 순간 체포되었던 것이다.

가이 포크스는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관련자들의 이름을 실토했고, 대대적인 가톨릭 교도 검거 선풍이 불었다. 결국 가이 포크스를 포함한 주모자 8명은 교수형을 당했고, 2명은 체포 과정에서 저항하다 죽었다.

가이 포크스는 원래 신교도였으나,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16세기 유럽에서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스페인군에서 복무하며 신교로 개종한 네덜란드인들의 독립 전쟁 진압에 종군하기도 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에서 주인공 브이가 쓰고 있는 가면은 바로 이 가이 포크스의 얼굴이다.

영국 성공회 교도들은 이 날을 이후 매년 11월 5일을 가이 포크스의 밤(Guy Fakwes Night)로 정해 이 날 밤이 되면 포크스를 본뜬 인형을 끌고 다니다 불태우는 축제를 열게 되었다. 사건을 미리 막은 것을 축하하는 뜻에서 의회가 법령으로 제정한 것이다. '놈, 녀석'을 뜻하는 guy도 가이 포크스에서 유래했다. 이 축제는 지금도 열리고 있으며,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남아프리카·뉴질랜드 등 영연방에 속한 나라들에서도 제각기 축제가 행해지고 있다. 이날 영국인들은 이런 시를 읊조린다.

Remember, remember the fifth of November,
The gunpowder treason and plot,
I see no reason
Why the gunpowder treason
Should ever be forgot

영화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a)에서 가이 포크스는 압제에 저항하던 투사의 상징이었으며, 저항 그 자체를 뜻했다. 전제 정권에 대한 투쟁을 상징하던 영화 주인공 브이의 가면은 가이 포크스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국에서 가이 포크스와 브이 포 벤데타는 일부 영화 매니아 사이에서만 조금 알려져 있었으나, 2008년 촛불 시위 기간 중 영화 내용과 현실이 맞물리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었다.

2008년 8월 15일, 인사동에서 열린 광복절 퍼포먼스에 등장한 가이 포크스들.



그러나 가이 포크스 데이는 가이 포크스가 권력자의 억압에 저항한 것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가 아니다. 가톨릭 교도들을 조롱하는 영국인 성공회 신자들의 축제이다. 가톨릭 교도들도 같이 축제로 즐길지, 얼마나 함께 즐길지는 알 수 없다. 모두 함께 즐기는 축제라고 보기 어려운 행사이지만, 가이 포크스가 억압하는 자에 대한 저항의 상징인 것은 아마 영국 밖의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고 기득권 세력이 다수를 억압하려 드는 제3세계 국가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해석도, 활용도 달라지는 사례로 영원히 남을 지도 모르겠다.

[키워드] 가이 포크스, 화약 음모 사건, 가이 포크스의 밤, 제임스1세, 영국 성공회
[분야] 역사,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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