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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1월 21일] 1824년, 가나(Ghana)의 아샨티족, 영국군을 전멸시키다.


오늘의 역사/1월 2010.01.21 20:58
찰스 매카시(Charles MacCarthy)가 지휘하는 영국군 및 판티족(Fanti) 연합군과 아샤티족(아샨티 제국, Empire of Ashanti)족이 느사만코우(Nsamankow)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이 패했고, 지휘관 매카시가 전사했다.  이 전투는 이후 1901년까지 계속된 영국-아샨티 전쟁 중 첫번째이다.

아샨티족 깃발 (출처:영어 위키피디어)


영국-아샨티 전쟁은 1824년부터 1831년까지 1차 전쟁, 1863년부터 1864년까지 2차 전쟁, 1873년부터 1874년까지 3차 전쟁, 1894년부터 1896년까지 4차 전쟁, 그리고 5차전이라고 할 야 아산티 전쟁(Yaa Asantewaa War)[각주:1]의 시작이었다.

19세기 아샨티족 제국 영역 (출처:영어 위키피디어)


찰스 매카시는 아샨티 제국과 판티족 간에 외교 협상이 결렬된 것을 핑계삼아 아샨티 제국으로 쳐들어갔다. 당시 영국군은 4개 부대였다. 찰스 매카시의 부대가 왕립 아프리카 식민지 군단(Royal Africa Colonial Corps) 정규군 80명, 민병대 170명, 판티족 24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판티족과 외교 협상 결렬은 순전히 핑계에 불과하며,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제국주의 침략의 일환이었다. 맥카시 부대 외에 황금 해안 일대에는 RACC 소속 정규군 600명, 3000명의 원주민 부대, 알렉산더 고든 래잉(Alexander Gordon Laing) 소령이 지휘하는 정규군 및 민병대 100명과 2000명의 원주민 부대, 그리고 정규군 300명과 원주민 6천명으로 편성된 부대 등 3개 부대가 더 있었다.

그러나 1월 20일 밤, 매카시는 다른 영국군 및 원주민 부대와 합류하지 않고 프라 강 지류에서 야영했다. 다음 날 오후 2시 경, 대략 10,000명 규모의 아산티족과 맞딱드렸다. 매카시는 그들 중에 아샨티 제국 통치자에게 불만을 품고 도망가려고 할 족장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병사들에게 국가를 크게 부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아샨티족은 더 가깝게 다가오면서 북을 연주했다. 매카시의 믿음은 헛된 것이었다. 영국군은 아샨티족 전사들에게 머스켓 소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카시의 영국군은 보급품이 부족했다. 매카시가 후방에 집적해놨던 탄약과 화약을 가져오라고 짐꾼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총소리를 듣자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짐꾼 1명만 오후 4시 경에 화약 1통과 탄약 1상자를 가져왔고, 그때쯤에는 병사들의 탄약과 화약은 거의 다 떨어졌다.

이를 눈치챈 아샨티족은 강을 건너 잽싸게 영국군 주둔지를 두동강냈다. 매카시 부대원 중 20여명만이 살아서 도망갔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매카시도 부관 윌리엄과 함께 도망치던 중에 피탄되어 죽었다. 부관 윌리엄은 포로가 되었다. 아샨티족은 매카시의 머리를 잘라 해골을 금도금을 했고, 아샨티족 통치자는 그 해골을 술잔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전투는 Battle of Nsamankow로 불린다.

이후 영국과 아샨티족은 황금 해안을 놓고 1901년까지 5 차례의 전쟁을 벌였고, 결국 아샨티 제국은 멸망하고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황금 해안 지역 부족들은 가나 (Ghana)라는 이름으로 1957년에 독립한다.

오늘날 가나에서 부족이나 종족이 큰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아샨티족은 지금도 가나의 주요 부족 중 하나이며, 전체 인구의 약 14%를 차지한다. 아샨티족 출신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는 비록 순수 아샨티족은 아니고 판티족과 혼혈인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있다.

[키워드] 아샨티족, 가나, 황금해안, 영국 제국주의, 아프리카
[분야] 역사, 전쟁사, 가나, 영국



  1. 이 전쟁은 명칭이 여러가지다. Yaa Asantewaa War, War of the Golden Stool, the Third Ashanti Expedition, the Ashanti Uprising 등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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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1 : Comments 3
  1. Favicon of http://goddls1.tistory.com BlogIcon 행인1 또는 甲士1 2010.01.21 22:30 신고 Modify/Delete Reply

    수십년 후에 이산들와나에서도 영국군이 탄약이 떨어지는 바람에 피박을 쓴 적이있지요.

    • Favicon of http://dcafe.tistory.com BlogIcon deutsch 2010.01.21 23:38 신고 Modify/Delete

      이산들와나 전투는 탄약 문제도 있지만, 줄루족을 막아낼 수 있는 전술을 훈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전술을 쓰지 않았던 부대 운용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산들와나 전투가 있었던 바로 그날 벌어졌던 로크스크리프 전투에서는 고작 139명으로 4,000 ~ 5,000명을 막아냈습니다. 탄약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 Favicon of http://goddls1.tistory.com BlogIcon 행인1 또는 甲士1 2010.01.23 21:34 신고 Modify/Delete

      음, 그렇기도 하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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