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 [오늘의 역사 - 11월 11일] 1869년, 이탈리아의 사실상 마지막 국왕 비토리오 에마뉴엘레3세 태어나다


오늘의 역사/11월 2009.11.11 03:08
1869년 11월 11일,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사실상 마지막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 국왕이 태어났다.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정권을 수립할때, 그리고 그가 실권하고 몰락했을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전후 처리 과정에서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무솔리니 정권을 승인했다는 과거사 책임으로 결국 퇴위했고, 이탈리아가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의 사보이 가문은 해외 망명하게 된다.


1869년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나폴리에서 움베르토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움베르토 1세의 유일한 자식이었다. 특이하게도 빅토르 에마뉴엘레 2세는 당시 기준으로도 무척 단신이어서 성인이 된 후에도 키가 1m 53cm에 불과했다. 1900년에 움베르토 1세가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한 후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가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존중했다. 하지만 새 국왕은 1900년 ~ 1922년 사이 정치 불안정을 초래한 이탈리아 의회 정치 위기를 해결하는 문제에 매일 개입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삼국동맹의 조약 내용을 무시하고 중립을 지키던 이탈리아는 결국 삼국협상측과 손을 잡고 독일 및 오스트리아와 맺었던 삼국동맹을 파기한 후 연합군으로서 참전하게 된다. 전쟁 중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전쟁터를 돌며 병사와 이탈리아 민간인들을 돌보았는데 이탈리아인들은 이 시기에 국왕을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전후에 경제 공황을 일찌감치 겪게 되었다. 이 시기를 틈타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1922년에 검은셔츠단을 앞세워 쿠데타를 일으키자 결국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무솔리니를 수상을 지명했다. 이후 실제 권력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에 넘어갔고,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명목상의 군주로 전락했다. 무솔리니는 1935년에 정복한 에티오피아의 황제 관과 알바니아 국왕 호칭을 바치며 적당히 다루었다. 결국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이탈리아의 국왕이며, 알바니아 국왕이자, 에티오피아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얻었던 국민의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

1936년, 이탈리아군 원수 제복 차림의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


1940년, 독재자 무솔리니는 나치 독일을 따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전황은 독일과 이탈리아에 불리해졌다. 1942년 말 리비아와 튀니지의 이탈리아군이 연합군에 항복하고, 비슷한 시기에 동부전선에 파견된 이탈리아군 10개 사단이 괴멸되었다. 북아프리카를 완전히 장악한 연합군은 시칠리아를 거쳐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했다. 1943년 7월 19일, 연합군이 처음으로 로마를 폭격한 후 5일 뒤인 24일에 파시스트 평의회는 무솔리니의 실각을 결정했다. 충격받은 무솔리니는 헌법상 수상 임명권은 국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다음 날 오후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를 알현했다. 파시스트 평의회의 결정을 무력화시켜달라고 청원하러 간 것이었다. 그러나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무솔리니를 해임하고 피에뜨로 바도글리오 (Pietro Badoglio) 원수를 새 수상에 임명했다. 그러더니 무솔리니를 체포해버렸다.

하지만 전쟁 후 1922년의 결정과 이후 파시스트 정권을 지원했다는 점때문에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는 국왕이 퇴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이탈리아를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결국 자신때문에 초래된 상황이어서 1946년 5월 9일 왕정 폐지 부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퇴위하고 아들 움베르토 2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6월 2일 국민투표 결과 54%가 왕정 폐지에 찬성하여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의 희망을 물거품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이 투표 결과에 따라 현재 적용 중인 신헌법을 제정하고 1948년 공화국이 되었다.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는 이집트로 망명하여 1947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망했다. 이탈리아 왕국의 공식 마지막 국왕은 1946년 5월 9일부터 6월 12일까지 재임한 움베르토 2세지만, 사실상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가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 이후 사보이 왕가는 해외로 망명했으며 사보이 왕가의 재산은 몰수당했고, 2002년까지 사보이 왕가의 남자들은 이탈리아에 입국할 수 없었다. 이들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망명 생활을 했는데, 2002년 이탈리아 의회는 사보이 왕가의 귀국을 허용하기로 결의했다. 그런데 지난 2007년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3세의 손자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와 그의 아들 에마누엘레 필레베르토는 2억 6천만 유로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발표하여, 빈축을 산 바 있다. 이탈리아 정부와 정치권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과거사에 대한 손해배상을 추진하겠다고 대응했다.
[키워드]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이탈리아 왕국, 무솔리니, 파시스트
[분야] 이탈리아, 역사



신고

Trackback 0 : Comment 1
  1. Favicon of http://look.4some.info/seo-tips/motorised-satellite-dish-for-caravans/ BlogIcon Find Out More 2012.03.29 09:34 신고 Modify/Delete Reply

    춤법/문법 사기 용퍼기 대하..

Write a commen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