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 [오늘의 역사 - 9월 6일] 1945년,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발표


오늘의 역사/9월 2008.09.06 12:00


1945년 9월 6일, 구 경기여고 강당에서 건국준비위원회가 개최한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건국을 선언하며 발표한 정부이다. 1948년 9월 9일에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다른 정부다. 약칭으로 "인공"이라 불렀다.

이미 해방 전부터 "건국동맹"이라는 이름의 비밀조직을 운영하던 여운형은 해방되자마자 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준")를 조직했다. 건준은 9월 6일에 인민대표자대회를 열어 중앙인민위원 55명과 후보위원 20명, 고문 12명을 선출하고 지방에 행정 조직 격인 "인민위원회"를 설치했다. 9월 8일, 건준 사무실에서 개최된 중앙인민위원회는 주석 이승만, 부주석 여운형, 국무총리 허헌, 내무부장 김구 등으로 구성된 내각을 발표했다. 중앙인민위원은 민족주의계 9명, 여운형이 이끄는 중도 좌파 계열이 10명 내외였으며 나머지 2/3는 박헌영을 수장으로 한 공산주의 계열이었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정강과 강령 등을 발표하며 실제 정부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민족주의자 대부분은 충칭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인정하며 조선인민공화국 참여를 거부하고, 9월 7일 조선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국민대회준비위를 9월 7일에 개최했다. 발기인은 송진우, 김성수, 장택상, 김준연, 서상일 등 330여명이었다. 인공이 내각을 발표한 9월 8일에는 한국민주당 발기인 1000여명의 이름으로 조선인민공화국타도 성명서가 발표되었으며, 9월 16일에는 한국민주당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이리하여 한반도 남부의 건국 준비 세력은 조선인민공화국(산하의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계열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민족주의 계열 간에 분열하여 대립하게 되었으며, 해방 정국 이후 계속된 좌우익 간에 대결이 이미 이때 시작되었다.

9월 9일에 정식으로 통치 업무를 개시한 미군정은 결국 10월 10일, 38선 이남에는 미군정을 제외한 어떤 정부도 없다며 경고했다. 이미 인공의 주석으로 임명된 이승만 역시 10월 16일에 귀국한 후 10월 23일에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결성하여 조선인민공화국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11월 7일에는 방송을 통해 정식으로 주석 취임을 거부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이유였지만, 인공이 공산주의자들과 좌익 세력이 주축인 것도 이유였다.

미군정은 10월 10일에 경고한 이후, 12월 12일에는 정식으로 인공 활동을 단속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미군정은 인공과 임시정부 모두를 정부 승인은 물론이고 단체로서 인정도 하지 않았다. 결국 12월 12일 발표 이후 경찰과 미군의 탄압과 압박 속에 인공은 점차 소멸해갔으며, 인공에 참가했던 좌익 세력은 1946년 2월 조선공산당 중심의 민주주의민족전선에 집결했다.

[키워드] 해방 정국, 건국, 조선인민공화국, 미군정, 임시정부, 여운형
[분야] 정치, 대한민국

[ 같은 날 다른 사건 ]


[ 비슷한 사건 ]



Trackback 0 : Comment 0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