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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역사 - 9월 4일] 1909년, 청나라와 일본이 간도협약을 체결하다.


오늘의 역사/9월 2010.09.04 00:00

1909년 9월 4일, 청나라와 일본은 간도와 만주 철도를 주고받는 간도 협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오랜동안 조선과 청나라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던 간도 땅은 중국 영토가 되었다. 2009년, 간도 협약 100주년을 맞아 국회에서는 간도 협약 무효 결의문을 채택하고, 민족회의통일준비정부라는 단체는 간도 반환 소송을 국제 사법 재판소에 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간도는 백두산 북쪽 만주 땅이다. 현재 중국의 지방 구획으로는 길림성, 흑룡강성 등이 포함되며, 길림성에 조선족 자치주가 있다. 18세기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한반도에서 조선인들이 건너갔고, 오랜동안 조선의 문화와 풍습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일제 강점기 동안에는 무장 투쟁의 주요 근거지이기도 했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간도 영토 분쟁은 백두산 정계비에 새긴 "서위 압록, 동위 토문((西爲鴨綠, 東爲土門)"이라는 양국의 국경선을 정한 문구에 대한 해석 차이때문에 발생했다. 조선은 토문강을 송화강의 한 지류로 본 반면, 청나라는 그것이 두만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 백두산 정계비는 숙종 30년인 1712년 백두산 분수령에 세운 비다. 전체 문장은 烏喇摠管 穆克登, 奉旨査邊, 至此審視,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 勒石爲記, 康熙 五十一年 五月十五日로 "오라총관 목극등이 황지를 받들고 변계를 조사한 결과 서쪽은 압록강(鴨綠江)이고, 동쪽은 토문강(土門江)이며 분수령 상에 비를 세워 명기한다"라는 내용이다. 이 정계비는 당시 조선과 청나라 양쪽 관료들이 함께 세운 비였다.

1881년, 청나라가 간도에 대한 봉금 조치를 해제하면서 많은 청나라인들이 간도로 슬금슬금 몰려들었고, 이떄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1885년부터 1888년까지 3차례 회담이 열렸지만, 양국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문제는 역시 東爲土門에서 土門이 어디냐 하는 문제였다. 아무런 결론을 못낸채 일본은 착착 조선을 식민지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더 이상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했다. 간도에는 1903년 이범윤이 파견되어 간도의 행정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러일전쟁 후 그는 러시아로 망명한 상태여서 대한제국이 제대로 간도를 통치하지는 못하고 있었다.일본은 대한제국을 대신하여 청나라와 간도문제에 관한 교섭을 벌여 이 날 남만주철도 부설권과 푸순 탄광 개발 등 4대 이권을 얻는 대가로 한국 영토인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는 협약을 쳬결한 것이다. 서로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조약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한·청 양국의 국경은 도문강(圖們江:토문강, 청나라 주장에 따라 두만강으로 해석)으로서 경계를 이루되, 일본 정부는 간도를 청나라의 영토로 인정하는 동시에 청나라는 도문강 이북의 간지(墾地)를 한국민의 잡거(雜居)구역으로 인정한다.
② 잡거구역 내에 거주하는 한국민은 청나라의 법률에 복종하고, 생명·재산의 보호와 납세, 기타 일체의 행정상의 처우는 청국민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③ 청나라는 간도 내에 외국인의 거주 또는 무역지 4개처를 개방한다.
④ 장래 지린[吉林]·창춘[長春] 철도를 옌지[延吉] 남쪽까지 연장하여 한국의 회령(會寧) 철도와 연결한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2차 국공내전이 끝난 후 중화인민공화국은 간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삼았다. 청나라의 것을 유리한 것은 계승한 셈이다. 중국도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라지만, 영토 욕심에서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나라다. 거기에 중국 전통의 중화주의까지 있으니.

2009년, 간도 협약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여야의원 59명이 간도 협약 무효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간도 협약이 1905년 을사조약에 의거하여 일본이 대신 외교권을 행사한 것인데, 을사조약 자체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무효가 된 것이니 간도 협약도 무효라는 논리이다. 2009년에는 영토 문제에서 100년 시효설이 돌았었다. 100년이 시효라서 간도를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루머였다. 그러나, 이건 정말 루머에 불과하다. 영토 문제에서 100년 시효 같은 건 없다. 이스라엘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100년이 아니라 1900여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땅을 빼앗아 나라를 세웠다. 2004년에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반기문 현 UN사무총장은 그떄에도 "100년 시효같은 건 국제적으로 확립된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고, 2009년에도 외교통상부에서 똑같은 입장을 되풀이 했다.

다만, 간도를 되돌려받기 위해서는 북한과도 협조가 필요한 문제다. 북한이 1962년에 현 국경선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한 적이 있기 떄문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입장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지난 1990년에 동서독이 재통일하면서 폴란드와 소련이 헬무트 콜에게 동독이 인정했던 오데르-나이세 동독-폴란드 국경선을 똑같이 인정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물론 서독은 그 이전에 그 국경선을 인정했기 때문에 "뭘 또 인정하라는 거야"라는 짜증섞인 반응이긴 했지만. 폴란드와 소련은 통일 독일이 옛 영토의 환원을 요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 요구를 했던 것 같다.

간도를 반화받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국가가 다 된 중국과 치열한 외교전을 전개해야 한다. 중국이 간도를 순순히 "아, 네, 도로 가져가세요"라고 돌려줄 리 만무하지 않는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 왜곡을 서슴치 않으며 영토 보존에 엄청난 노력까지 기울이고 있는데 말이다. 그 외교전에서는 반환을 받기 위해서는 현 국경선을 받아들인 북한도 똑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남북 관계와 북-중 관계를 봐선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자료
[키워드] 간도, 청나라, 백두산 정계비, 일본 제국주의, 대한제국, 일본, 조선
[분야] 한국, 대한제국, 청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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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paydayloans2me.com/faxless-payday-loan BlogIcon faxless payday loan 2011.12.28 18:36 신고 Modify/Delete Reply

    제2차 세계 대전 후 2차 국공내전이 끝난 후 중화인민공화국은 간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삼았다. 청나라의 것을 유리한 것은 계승한 셈이다. 중국도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라지만, 영토 욕심에서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나라다. 거기에 중국 전통의 중화주의까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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