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 [오늘의 역사 - 8월 24일] 1945년, 조선인 귀국자들을 태운 우키시마 마루 침몰


오늘의 역사/8월 2010.08.24 00:00
1945년 8월 24일,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을 뒤로 하고 수천 명의 조선인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키시마 마루(浮島丸)가 교토 부 마이즈루 항에 기항하려던 중에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침몰했다. 이 배는 일본 해군 소속 수송선으로 8월 22일에 아오모리 현 오미나토 항을 출항해 부산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24일 돌연 항로를 바꿔 교토 부 마이즈루 항에 기항하려다 침몰한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여전히 의문사항이 많은 사건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사고 발생 1주일 후인 9월 1일에 우키시마마루의 도리우미 함장은 사건에 대한 전모를 발표했다. 사고 당시 우키시마마루는 조선인 3,725명과 일본 해군 승무원 255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중 조선인 524명과 일본 해군 25명 등 549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사고 후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 마루가 미군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일본 근해에 투하한 기뢰를 건드려 폭발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천안함 침몰 사건처럼 여러가지 주장이 대립한 채 논란만 남아 있다. 이 사건에서 분명한 것은 "1945년 8월 24일에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태운 우키시마 마루가 마이즈루 항에서 침몰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 뿐이다.

첫번째 미스테리는 침몰 원인이다. 일본 정부는 미군이 투하했던 기뢰를 건드려 폭발했다고 발표했다. 사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은 일본의 해상 수송로를 차단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기뢰를 일본 근해에 투하했다. 특히 1945년 초, B-29 폭격기들은 폭탄 대신에 기뢰를 일본 근해에 투하했다. 당시 일본 해군(Imperial Japanese Navy)은 나름대로 열심히 기뢰 제거 작업을 벌였지만, 미국은 일본군이 치운 양보다 몇 배 많은 기뢰를 매일 B-29로 투하했다. 결국 이 기뢰 때문에 일본의 마지막 남은 해상 수송로는 완전히 차단되었다. 전후에 새로 창설된 일본 해군(Japan Maritime Self-Defense Force, 공식 명칭은 해상자위대이긴 하지만)이 대잠전 세력과 소해(기뢰 제거) 세력이 전체 전력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것[각주:1]이다. 따라서 미군이 뿌린 기뢰에 당할 수도 있기는 하다. 미국도 이 사건이 자신들이 뿌린 소리에 반응하는 음향 감응 기뢰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한국과 북한 쪽에서는 미군이 뿌린 기뢰를 건드려 폭발한 게 아니라 일본이 고의로 사람들을 가둬놓고 폭발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키시마 마루도 일본의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해서 분명한 증거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는 사상자 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 정부는 모두 549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조선인 수천 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들은 사망한 사람이 5,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승선자 수도 확실한 수치가 없다. 어디에서는 1만 2000여명이 총톤수 4000톤이 안되는 배에 탑승했다는 자료도 있다. 신빙성은 미지수다. 양측의 입장은 여기서 또 극명하게 갈리는데, 생존자와 유가족은 당시 일본 해군 승무원들이 조선인을 배 안에 가뒀다고 주장하지만, 일본 정부는 갑판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그나마 피해를 줄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여전히 대립한 가운데 분명하지 않다.

세번재, 여기에 부산으로 향하던 배가 왜 갑자기 교토의 마이즈루 항으로 항로를 바꿨는지도 밝혀진 것이 없다. 오오모리현 오미나토 항을 출발한 우키시마 마루는 8월 24일 6시까지 부산에 도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장 가까운 교토항에 입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강경한 상부 명령에 항로를 바꾼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왜 당시 일본 해군 운수사령부에서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마이즈루 항에 입항할 당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목조 소해함들이[각주:2] 마중을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지난 2001년 8월 24일 자 경향신문이 보도한 생존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이 사건이 일본 해군이 사전에 계획한 음모였다는 심증을 부각시키게 된다. 일본통운회사에서 하역작업을 했다는 정기영 옹(인터뷰 당시 75세) "사건 당일 일본 승무원들이 ‘배에 기름과 물이 떨어졌다’며 배를 세우더니 구명보트를 타고 도망갔다. 그들이 떠나자 ‘꽝’소리와 함께 기관실이 터져 주위가 기름투성이였다"고 주장했다.

아뭏튼 여러가지 면에서 의문 사항이 많은 사건이지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정말로 일본 정부가 귀국하는 조선인이 꼴보기 싫어서 그런 짓을 한거라면 영원히 감출 것이다. 현재로서는 명쾌한 답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지난 1992년에 일본 법원에 배상청구 소송을 제소하였다. 배상 청구 금액은 1인당 800만엔이었다. 2001년 8월 23일, 교토지방재판소에서는 일본 정부의 안전 배려 의무 위반을 이유로 생존자 15명에게 1인당 300만 엔의 위로금 지급 판결을 내렸으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요청은 기각했다. 그러나 이 판결마저 2003년,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과 관련한 2편의 영화가 있다. 《아시안 블루》와 《살아있는 영혼들》이란 영화다. 《아시안 블루》는 교토 주민들이 후원하여 1995년에 제작한 영화고, 《살아있는 영혼들》은 북한에서 지난 2000년에 만든 영화다. 지난 2001년 이 두 편은 모두 서울에서 시사회를 가진 적이 있다. 《살아있는 영혼들》은 "북한판 타이타닉"이라는 별명을 얻어 해외 영화제를 돌고 돌아 시사회를 가진 것이라 한다. 《아시안 블루》는 일본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일본인들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다른 아시아 국가 사람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영화라고 한다. 그동안 일본 내 반전영화라 해도 순전히 일본인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였다[각주:3].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일본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과 일맥상통인 모양이다.

사고가 발생했던 교토에 우키시마마루 순난자추도비가 있으며, 부산에도 희생자 위렵탑 건립을 추진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위령탑을 세웠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지난 1995년, 그때까지 살아 있던 생존자들이 합동 증언대회를 가지기도 했지만, 사건은 여전히 미스테리다ㄴ. 그리고 생존자들은 고령으로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는 중이다. 정신대 할머니들처럼.

▶참고자료
[키워드] 우키시마 마루, 기뢰, 일본 전쟁 범죄, 제2차 세계 대전, 조선, 해상 사고
[분야] 일본, 한국, 전쟁사

[ 같은 날 다른 사건 ]
■ 79년 8월 24일, 이탈리아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등의 도시가 화산재에 묻히다.
■ 410년 8월 24일, 서고트족(Visigoths)의 알라리크(Alaric) 족장, 로마 함락
■ 1572년 8월 24일, 프랑스 위그노 전쟁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사건 발생
1821년 8월 24일, 멕시코 - 스페인 코르도바 조약 체결
■ 1914년 8월 24일, 독일군이 벨기에의 나무르(Namur)를 점령하다.
■ 1932년 8월 24일, 에밀리아 에어하트(Amelia Earhart)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대서양 무착륙비행을 하다.
■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 통일혁명당 지하간첩단 수사 발표
■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 국교수립. 이날부로 대만과 단교
■ 1995년 8월 24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 95를 출시하다.

[ 비슷한 사건 ]



  1. 일본은 대잠초계기 P-3 오라이온을 101대를 운용하는 것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 잠수함 부대에 호되게 당하여 수송선 대부분을 잃어 보급이 완전히 끊긴 뼈저린 기억때문이다. 물론 냉전 시기 소련의 잠수함 세력에 대항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또, 현재 일본 해군의 성장 자체가 한국전쟁 중에 원산 앞바다에 비밀리에 소해정을 파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본문으로]
  2. 소해정을 나무로 만든 것은 자기 감응 기뢰때문이다. 이 기뢰는 강철 선체의 자기장에 반응하여 목표물을 마중나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는 자기장을 발생시키지 않는 FRP, 쉽게 말해 플라스틱으로 소해정을 만든다. 당시 미군은 자기 감응 기뢰와 음향 기뢰를 대량으로 뿌렸다 [본문으로]
  3. 오마이뉴스 - 우키시마마루 사건을 아십니까? (2000년 8월 10일 자 기사)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rackback 0 : Comments 2
  1. Favicon of http://www.broadspeed.com/new_cars/Peugeot/5008 BlogIcon Peugeot 5008 2012.06.14 05:27 신고 Modify/Delete Reply

    그것은 너무 복잡하고 저를 매우 광범위한 것 같습니다. 제가 다음 게시물에 대한 기대, 나는 그것의 묘리를 터득하다하려고합니다!

  2. 박수진 2012.12.06 01:01 신고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빨리 정부에서 관심좀 가지고 해결해주었음 좋겠네요..

Write a comment

티스토리 툴바